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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센강 위에서의 식사, 파리내 여행/오로라와 미술관과 크리스마스 마켓 2025. 3. 27. 00:34
오로라와 미술관과 크리스마스 마켓 - 13 센강 위에서의 식사, 파리 탈 것.
저는 탈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비행기를 시작으로, 기차를 타는 것도, 버스를 타는 것도 좋아하고 아무 생각 없이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좋아합니다. 탈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편안하면서 다채롭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가만히 있어도 옆의 풍경은 계속 바뀐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비행기를 탈 때도 거의 창가에 앉는 편이고, 밖이 어두운 밤 비행의 경우 잘 때를 제외하면 창문을 잘 닫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요. 물론 탈 것에 배도 빠지지는 않습니다. 이동수단으로써의 배를 탈 기회는 많지는 않지만 유람선이라던지, 도심 강을 지르는 크루즈와 같이 관광으로써의 배는 여행을 가면 자주 타는 편입니다. 그리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큰 강이 있는 파리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세계 유산을 품은 센강
센강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성당 도심을 가로지르는 큰 강이 있는 도시들이라면 으레 그렇듯 파리의 센강도 긴 역사와 다양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센 강이 다른 강들과 다른 점이라면 바로 센강 중 파리 중심부분을 지나는 부분 중 비르하켐 다리(Pont de Bir Hakeim)와 시뉴 섬(Île aux Cygnes) 부근부터 생루이 섬(Île Saint-Louis) 사이의 구간 주변부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센강 그 자체는 세계 유산이 아니지만, 문화유산인 센강 주변의 다양한 건축물들과 경관을 센강이 품고 있는 셈입니다. 다양한 센강의 크루즈들은 바로 이 세계 유산 구간을 운항합니다. 센강을 운항하는 크루즈를 타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다양한 상품을 찾아보다 한 번도 배 위에서 밥을 먹어본 경험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 참에 한번 배를 타면서 밥도 먹어볼 생각으로 바토 파리지앵 디너 크루즈를 예약했습니다. 물론, 디너 크루즈는 식사를 해야 하기에 다른 크루즈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운항한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야경을 조금 더 천천하고 여유롭고 안전하게 둘러볼 수 있으니까요.
바토 파리지앵 디너 크루즈
바토 파리지앵 디너 크루즈 메뉴 1 바토 파리지앵 디너 크루즈 메뉴 2 출발시간이 되자 크루즈는 천천히 에펠탑 앞의 선착장을 출발했고 곧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해는 져서 센강 변의 다양한 건축물들은 노란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습니다. 사실 디너 크루즈를 타면서 음식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음식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맛있는 저녁을 먹기 위해서라면 디너 크루즈의 식사는 약 230 미국달러 정도의 가격을 생각했을 때 아쉬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정도 돈이 아깝지 않았던 건, 바로 다른 강도 아닌 세계 유산인 센강의 저녁을 가르며 천천히 나아가는 크루즈 위에서 먹는 식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2시간 30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지나가는 파리 센 강의 저녁 풍경을 보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이런저런 대화를 메인으로, 괜찮은 맛의 식사와 와인을 곁들이는 그 시간은 어쩌면 미슐랭 식당에서 먹는 저녁으로는 채울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의 식사였습니다. 얼마나 즐거운 시간이었는지 11시가 가까워져 다시 에펠탑 앞의 선착장에 돌아왔을 때는 지루함보다는 내리기 싫다는 아쉬움이 클 정도였습니다.
여행은 감정의 추억으로 남습니다
여행은 사실의 기억으로 남는게 아닌 감정의 추억으로 남습니다. 아무리 예쁜 건축물을 봐도, 아무리 황홀한 풍경을 봐도 보는 사람의 시선이 예쁘고 황홀하지 않으면 그곳에서의 추억은 예쁘고 황홀하게 남지 않습니다. 제 뒷자리에는 한 커플이 앉았습니다. 저보다도 어려 보이는 커플이었는데요, 디너가 시작되자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먹여주는 모습을 보며 이 디너크루즈라는 공간이 주는 그 행복한 느낌이 너무 좋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큰 소리가 들리기에 무슨 소리인지 귀를 기울여보니 그 커플은 어느새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커플은 그 순간부터 배에서 내릴 때까지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어떤 대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커플이 싸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반대에 있는 파리까지 와서, 한 사람당 3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써가며 다툰 기억을 안고 갈 두 사람을 생각하니 괜히 안타까웠습니다. 저를 포함해 그 테이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그 두 사람의 냉랭한 모습이 참 안쓰러웠습니다. 아마 저 두 사람에게 센강 디너 크루즈를 생각하면 싸운 것만 생각날 테니까요.
가장 황홀한 순간
샤요궁에서 본 에펠탑 센강 디너 크루즈의 진정한 정수는, 음식도, 풍경도 아닙니다. 강 위의 배라는 제한된 공간과 2시간 30분 동안 배 위에만 있어야 하는 제한된 시간. 그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음식과 와인을 곁들이며 세상에서 가장 멋진 강변 중 하나인 센강의 풍경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진솔한 대화와 그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바로 디너 크루즈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배 위에서 즐거운 대화와 함께 디너 크루즈를 마치고, 샤요궁(Palais de Chaillot) 앞 광장에서 나눈 대화들을 생각하며 빛나는 에펠탑을 바라보는 순간은 파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황홀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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