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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헬싱키에서 캐리어 끌기, 헬싱키내 여행/오로라와 미술관과 크리스마스 마켓 2025. 3. 10. 03:47
오로라와 미술관과 크리스마스 마켓 8 헬싱키에서 캐리어 끌기, 헬싱키 캐리어를 끌 것인가, 택시를 탈 것인가.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캐리어를 끌고 호텔까지 갈 것이냐, 아니면 택시를 탈 것이냐입니다. 특히 이 고민은 오래된 도시로 여행을 할 때 더 깊어집니다. 대부분의 인프라가 현대에 지어진 한국과는 달리, 유럽의 도시들은 중세,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인프라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보니 인도가 좁은 곳도, 가는 길이 너무 꼬불꼬불한 경우도, 경사가 너무 급한 경우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도가 돌로 마감이 되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캐리어 끌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겨울에 헬싱키로 여행하는 경우 상황이 더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좁은 인도와 언덕도 쉽지 않지만 겨울 헬싱키에는 눈이 많이 오거든요. 여기에 더해 눈이 오면 한국처럼 염화칼슘을 뿌리는 대신 주로 아주 작은 돌들을 뿌립니다. 이게 미끄럼을 방지하는 데 꽤나 효과적이어서 걷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만약에 캐리어를 끈다면, 글쎄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힘들 수 있습니다.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저는 여행을 많이 가는 편이고, 나름 계획도 잘 짜서 다니는 P형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끔씩 뭐에 씌인듯 뭐가 잘 안 풀릴 때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가 결항이 되어 여러 번 티켓을 바꾼 끝에 24시간 뒤에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짐은 출발지에 그대로 있다거나,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려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연기가 나오더니 화재라며 엘리베이터가 작동이 안 되고 비상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하필이면 30층이 넘는 곳에서 묵고 있었다던지 하는 경우처럼 말이죠. 이런 경우는 뭐, 제 잘못이 아니니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갈 수는 있는데, 가끔은 그렇지 않은 상황도 있습니다. 다 지나고 나니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핀란드 라피지역 여행을 마치고 헬싱키로 돌아오던 날이 딱 그런 날이었습니다.
헬싱키에는 다양한 교통수단이 있습니다. 일단 기차와 광역철도가 있습니다. 지하철도 있구요, 트램도 있고, 페리도 있고, 버스도 있습니다. 마치 현대 도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교통수단이 모인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헬싱키 공항에 내려서 광역철도를 타고 헬싱키 중앙역까지 이동하는 것 알고 있었기에 공항에서 나와서 자연스럽게 광역철도를 타러 갔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사용하는 건 아니지만, 헬싱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헬싱키 도심으로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 루트는 보지 않기 위해 구글 길 찾기에서 Subway와 Train 결과만 보여주도록 설정해 놨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괜찮니?
캐리어를 끌고 걷기에 최악이었던 그 날의 헬싱키. 헬싱키 중앙역에서 내려서 호텔로 이동을 하기 위해 다시 구글지도로 검색을 해보는데 제게 보인 선택지는 두 개였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서 10분 걷기. 그리고 15분 걸어서 가기. 지하철을 타고 가면 총 13분이 걸리지만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과 지하철 역까지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는 불편이 있을 수 있고, 걸어서 가면 조금 힘들 수는 있지만 딱 15분만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그래서 걸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바보같이요. 15분이 걸린다던 길은 걸어서 2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오르막도 있었고, 쌓인 눈과 더불어 바닥에 뿌려진 작은 돌들 때문에 캐리어 바퀴는 움직이지 않았고 거의 캐리어를 질질 끌다시피 했으니까요. 호텔에 도착했을 때 체크인을 도와줬던 직원이 저를 보고는 딱 한마디를 했습니다. ‘괜찮니?’
사실 헬싱키 중앙역에서 호텔 앞까지는 트램을 타면 걷는 거리고 길지 않고 빨리 올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구글 지도 길찾기에 설정해 놓은 필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저렇게 트램이 많이 다니고, 버스가 많이 다니는데 구글 지도에서는 계속 걸어가라고만 표시를 했거든요. 그제야 필터를 해제하고 나니 헬싱키 내부 곳곳을 연결하는 버스와 트램들이 검색 결과에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 필터를 설정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에서는 비슷한 상황에서 필터를 적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여행에서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아마도 그저 그런 일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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