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바니에미까지 가는 길

 

 

장거리 비행

일반적으로 장거리 비행은 7시간 정도를 기준으로 나뉩니다. 대서양 횡단 노선 중 가장 바쁜 노선 중 하나인 뉴욕에서 런던까지가 방향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7시간 정도가 걸리니 그 정도부터는 장거리 비행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뉴욕 런던 노선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노선 중 가장 짧은 노선 중 하나니 결국 미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노선들은 대부분 장거리 노선이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10시간 정도가 걸리는 텍사스 댈러스에서 핀란드 헬싱키로 향하는 노선은 충분히 장거리 노선이라고 할만하죠.

하지만 제게 장거리 노선의 느낌은 약간 다릅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한국을 오가는 일이 잦은데요, 텍사스 댈러스에서 서울 인천까지 향하는 노선은 약 15시간, 때에 따라서는 거의 16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물론 서쪽 방향으로의 비행이라 비행시간이 동쪽 방향으로 향하는 비행보다 조금 더 길다는 걸 감안해야겠지만 주로 15시간 정도가 걸리는 비행을 하는 제게 7시간짜리 비행을 장거리라고 부르기에는 약간 애매하긴 합니다. 이번에 헬싱키로 향하는 10시간짜리 비행. 매번 14~15시간 비행을 하는 제게 10시간짜리는 어렵지 않게 느껴집니다. 아마 밥 먹고 잠자고 하면 도착할 시간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로바니에미까지 19시간의 여정,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블루베리 주스

핀에어 블루베리 주스와 다른 스무디 질감의 블루베리 주스

 

이번에 핀에어를 처음 이용해 봤는데 이 항공사가 쏙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실 서비스가 엄청 친절하다거나, 음식이 엄청 맛있었다거나, 승무원이 엄청 친절했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어이없을 수 있는 이유인데, 바로 핀에어에서 만들고 기내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블루베리 주스가 참 맛있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약간의 민티한 느낌도 나면서 걸쭉하지 않고 아주 맑으면서 청량한 블루베리 주스라니! 이 주스를 맛본 뒤로부터 다른 블루베리 주스가 오징어로 보일 지경입니다. 오죽하면 코로나 시절부터 핀에어가 그 블루베리 주스를 소매점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부터는 핀란드에서 여행하는 내내 그 블루베리주스만 찾아다녔으니까요.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위탁 수하물 하나에 블루베리 주스만 가득 채워서 가져오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행을 하면서 어떤 한 국가나, 도시, 또는 식당이나 상점, 항공사에게 좋은 인상을 갖는 건 너무나 단순하고도 사소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그 나라의 공기가 너무 좋았다거나, 야경이 아름다웠다거나, 종업원의 한마디가 마음에 닿았다거나 말이죠. 그냥 이번에는 그게 블루베리 주스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블루베리주스와 함께 심어진 핀란드와 핀에어에 대한 좋은 인상은 로바니에미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비행 중에 너무나 희미한 오로라지만 오로라를 봤다는 사실이 좋았고, 착륙 때 무드등이 오로라 빛깔이어서 좋았고, 입국심사가 미국과 달리 친절해서 좋았고, 헬싱키 공항의 무민 스토어가 너무 귀여워서 좋았고, 헬싱키 공항의 핀에어 라운지의 인테리어나 너무 깔끔하니 좋았고, 헬싱키에서 환승을 해 로바니에미까지 가는 비행기에서 블루베리주스를 두 번 줘서 반했습니다. 그렇게 환승시간을 포함해 19시간 정도가 걸리는 여정을 너무나 손쉽게 해냈습니다. 그놈의 블루베리 주스. 작은 종이컵에 받았던 약간의 블루베리주스가 19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너무나도 사소한 이유

저의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컨디션이 너무 개운하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붕 뜬것만 같은 행복한 기분으로 지내고, 동료가 아침 출근길에 사준 커피 한잔에 그날 세상이 밝게 보이기도 하고 말이죠. 그렇게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아침의 작고도 사소한 이유 하나. 삶에는 그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 사소한 이유 하나를 찾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루는 찾더라도 내일은 못 찾기도 하고, 어쩔 때는 찾다가 힘들어서 오히려 더 지치는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말이죠. 조만간 핀란드에 가서 진짜로 위탁 수하물 하나를 핀에어 블루베리 주스로 가득 채워와야 할 것 같습니다. 진짜 좋은 게 뭔지 아세요? 그건 바로 핀에어의 블루베리 주스는 상온보관이 가능해서 유통기한이 길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