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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북쪽으로 250km 더, 사리셀카내 여행/오로라와 미술관과 크리스마스 마켓 2025. 2. 8. 06:43
북쪽 끝에 가보고 싶은 열망
북극이라고 하면 무척이나 멀고, 춥고,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일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당장 영국만 하더라도 북위 51도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데,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 중 하나인 백두산 근처가 겨우 북위 42도 부근입니다. 핀란드의 수도인 헬싱키는 북위 60도에 위치하고 있고 로바니에미는 북위 66도 18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북극권의 시작을 대략 66도 33분으로 보고 있으니 로바니에미만 해도 거의 북극에 위치해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표현입니다. 로바니에미 산타 마을에는 북극권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서 있으니 무척이나 멀 것 같았던 북극이 무언가 손에 잡힐 것만 같은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뭔가 성에 차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물이 너무나도 맑은 몰디브의 한 섬에 가서 발만 담그고 오는 느낌이었달까요. 물론 몰디브에 가본 적은 없지만요.
저는 항상 북쪽의 끝에 가보고 싶었던 열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생 시절, 종종 구글 지도를 보면서 어디를 여행하고 싶은지 생각해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항상 궁금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노르웨이 트롬쇠였습니다. 제가 찾은,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도시권이 형성되어 있어 불편하지 않게 여행할만한 도시로 보였거든요. 이번 여행을 계획하며 트롬쇠를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이 여행을 본격적으로 생각하고 계획하던 무렵, 한 영어 블로거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한 호텔을 알게 되었습니다. 핀란드 하면 생각나는 건 바로 오로라와 핀란드, 그리고 그 둘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호텔이 로바니에미보다 훨씬 더 북쪽에 있는 사리셀카라는 도시에 있다는 환상적인 정보까지도 말이죠. 그렇게 로바니에미 다음의 행선지는 자연스레 사리셀카로 결정되었습니다. 로바니에미에서의 이동도 사리셀카가 트롬쇠보다는 훨씬 더 편리하게 보이기도 했고요. 사리셀카는 로바니에미에서 북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위도 또한 북극권의 시작이라는 66도를 넘어 68도 42분일 정도로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실 더 북쪽으로 가면 북극에 왔다는 기분이 더 좋아진다는 이유 말고도 현실적인 장점도 있습니다. 오로라는 자북극에서 더 쉽게 볼 수 있으니 오로라를 볼 확률도 올라가고요.
북쪽으로 3시간 30분 더
로바니에미에서 사리셀카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습니다. 로바니에미를 벗어나서 한참을 올라가다 소단킬라(Sodankylä)라는 작은 마을에서 멈춰 섭니다. 이 마을에서는 간이 정류장에서 잠시 멈춰서는 게 아닌, 터미널에 한 15~20분 정도를 쉬었다 갑니다. 한 시간 넘게 앉아만 있었더니 엉덩이가 간지러워 잠시 버스 밖으로 나갑니다. 옛날, 캐나다에서 30시간이 넘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기차 안은 공간이 넓기 때문에 왔다 갔다 걸으면서 몸을 움직일 수는 있지만, 실내에 계속 있으려니 좀이 쑤셨던 건 사실입니다. 기차를 탄지 몇 시간이 지났을 때,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건 조금 오래 정차하는 역에서는 몇 분 정차 후 출발할 건지 안내방송을 해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위로 조금 오래 정차한다 싶으면 밖에 나가 눈을 밟고 차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햇빛을 쐬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보고 간이역들을 구경하기도 했고요. 버스를 타고 사리셀카로 가던 날에는 날씨가 좋지 않아 그때의 따스한 햇빛은 없었지만, 버스 안 공기보다 훨씬 차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한결 나아집니다. 사람과 버스 모두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본격적으로 북쪽으로 출발하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잠시 멈춰 선 소단킬라(Sodankylä) 마법 같은 순간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느낌의 풍경이 나타납니다. 길가 옆으로는 순록 서너 마리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북쪽 먼 곳까지 도로를 놓고, 전기를 깔고 인프라 공사를 한 핀란드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오후 2시가 넘어가자 해가 슬슬 넘어가기 시작합니다. 텍사스의 사는 사람으로 확실히 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땅이 평평할수록 해가 늦게 진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한국은 일몰시간이 되기 전부터 해가 산에 가려 어둑해지는데, 텍사스에서는 해가 땅으로 넘어간 후로도 어느 정도 밝은 상태가 유지되거든요. 텍사스만큼의 평지는 아니지만 사리셀카로 가는 길도 높은 산이 많은 지형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일몰시간이 다가오자 하늘이 어둑해지더니 해가 넘어가고 나서는 금방 어두워집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한밤이 되는 건 아니고 천문학적으로 완전히 밤이 되는 천문박명이 오기 까지는 두세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만 해가 진지 얼마 되지 않아 3시 30분쯤 도착한 사리셀카에는 이미 밤이 충분히 내려앉아 있습니다.
어둠이 내러앉고 있는 사리셀카 사리셀카는 인구가 350명 정도 되는, 도시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마을입니다. 하지만 겨울 스키와 오로라 시즌이 되면 곳곳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11월 말, 이제 본격적인 성수기로 접어드는 시기이지만 이미 사리셀카에는 사람들이 몰리는 들뜬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겨울 모습만 보면 인구 350명 마을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모습과 분위기 입니다. 제가 머문 스타 아틱 호텔 사리셀카는 카우니스파(Kaunispää) 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호텔입니다. 사리셀카의 다른 호텔들이 눈과 침엽수에 둘러싸여 포근한 느낌을 준다면, 스타 아틱 호텔 사리셀카는 우뚝 솟은 시원함을 주는 호텔입니다. 객실에 들어서자 작은 사리셀카 마을이 한눈에 보입니다. 해는 져서 어두움이 밀려오고 있지만, 아직 완전한 밤은 되지 않아 어스름이 남아 있는 그 시간. 다른 장소에서는 끽해야 반 시간 정도 지속되는 이 순간이 사리셀카에서는 1시간도 넘게 자리 잡는 마법 같은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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