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행/오로라와 미술관과 크리스마스 마켓

2 산타마을의 연어, 로바니에미

헤디s 2025. 2. 1. 00:46

 

 

차디찬 느낌으로 기억되는, 기억될

로바니에미 공항을 나와서 숨을 한번 아주 크게 들이쉬니 떠오르는 느낌이 있습니다. 저는 약 8년 전 캐나다에 교환학생으로 반년을 지냈습니다. 저는 그 시절이 참 좋았습니다. 한국을 떠나니 스펙 쌓기나 취업 같은 압박에서 해방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교환학생이었기에 한국에서 듣던 수업의 양보다 2/3 정도의 수업만 들으면 됐었고, 절대평가였기에 캐나다에서 만난 친구들과 쓸데없는 경쟁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즐겁게 놀고, 공부하고, 파티하고, 스노보드를 타고 하는 즐거운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때 알게 된 친구들 중 몇 명과는 여전히 연락을 하고 지내는데, 제가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구들 모두 그 시절을 좋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순간을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냄새나 향기로 기억할 수도, 음악이나 소리로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 캐나다 시절을 차갑고 맑은 공기로 기억합니다. 영하 20도 가까이 되는 맑은 날씨에 밖에 나가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공해 없는 깨끗하고 맑고 차가운 공기가 폐포 끝까지 닿는 느낌이 들면서 코털이 어는 그 느낌. 8년 가까이 지난 어느 날 로바니에미 공항에서 그 느낌이 저를 다시 찾아올 줄이야. 안 그래도 블루베리 주스 덕분에 핀란드 뽕이 찼는데, 그 폐포 끝까지 차디찬 느낌이 더해지니 로바니에미의 모든 것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공항에 나오자마자 딱 공항버스가 있었고, 공항버스를 타자마자 버스가 딱 출발했거든요. 공항버스 최신 시간표를 찾을 수 없어서 걱정했었는데 말이죠.

 

 

 

그곳에 남겨놓고 오는 여행

 

로바니에미를 알게 된 건 산타클로스 마을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어린이가 안 그랬겠습니까만은, 저도 어릴 적엔 산타의 존재가 진짜라고 믿었으니까요. 예전에 유튜버 궤도님께서 방송에 나오셔서 ‘산타는 선물을 주는 게 아니라 레이저처럼 쏘는 겁니다. 그걸 맞으면 아이들이 죽어서 아이들 보고 자야지 산타 클로스가 온다고 말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걸 봤었습니다. 아마 제가 어릴 적에 이런 말을 들었었다면 조금 더 일찍 산타클로스 판타지에서 나올 수 있었겠지만, 제가 어릴 적에는 그런 분들이 안 계셨기에 저는 그 판타지가 조금 오래갔습니다. 솔직하게 산타마을에는 별다른 게 없었습니다. 사실 산타를 테마로 한 테마 파크가 더 잘 꾸며놨을 거예요. 그럼에도 산타마을이 특별하게 다가왔던 건, 아마도 어렸을 때의 그 느낌이 몽실몽실 떠오르며 마음이 말랑했던 그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핀란드, 북극권, 아기자기한 작은 마을, 주위를 둘러싼 날카로운 침엽수들, 그 위를 덮고 있는 눈과 그 눈에 먹혀버리는 자잘한 소음들, 그리고 ‘나도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지’하는 추억까지. 산타마을에 발을 디딘 그 순간 제 주위를 감싸고 있는 물리적인 환경과 감정들이 저를 참 벅차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왔구나.’ 하는 느낌까지 말이죠.

 

 

그냥 그런 마음이 좋아서였는지, 실제로 산타마을에 뭐가 있는지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산타 클로스의 공식 오피스에 들어갔지만, 사진을 찍으러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는 바로 발길을 돌렸고요, 그 아래의 기념품 샵에서는 그래도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작은 물건들을 샀습니다. 우체국에 들리고 몇 개의 상점을 보니 산타마을에는 딱히 뭔가가 더 남아있지는 않았습니다. 엽서라도 보내야 할까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은 엽서를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엽서를 보내고 나면 다시는 산타 마을에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지금보다도 더 어렸을 때 갔던 해외여행에서는 뽕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녔습니다. 이게 일본의 작은 도시들을 갈 때는 가능한 방법이었지만, 더 다양한 나라, 더 큰 도시들을 여행하게 되면서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여행을 가도 그곳의 모든 곳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여행을 마칠 때 어떤 도시에 가보지 않은 뭔가를, 해보고 싶지만 하지 않은 뭔가를 남겨놓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이 도시를 방문하리라는 마음과 함께요. 그렇게 저는 산타 마을에서 모두들 한다는 두 가지를 그곳에 남겨놓고 왔습니다. 엽서 보내기와 산타와 사진 찍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남겨놓은 것들을 하기 위해 다시 산타 마을에 가리라는 다짐과 함께요.

 

산타마을의 연어

 

정작 산타 마을에서 제가 하고 싶던 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All About Salmon이라는 작은 식장에서 파는 장작불에 구운 연어를 먹는 거였죠. 한국 사람들에게는 노르웨이 산 대서양 연어가 가장 유명합니다. 노르웨이에서 양식되는 연어는 대서양 연어(Atlantic Salmon)지만, 사실 대서양 연어가 연어들 중에서 엄청 맛있는 연어는 아닙니다. 저는 가장 맛있는 연어는 왕연어(King Salmon)라고 알고 있는데요, 바로 미국의 알래스카에서 많은 왕연어들이 공급이 됩니다. 이 알래스카의 왕연어들은 유통이 조금 더 편리한 시애틀로 옮겨져 유통이 되는데요, 이게 바로 제가 시애틀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시애틀에서 먹는 알래스카 왕 연어들이 진짜 맛있거든요. 하지만, 왕연어보다 맛이 조금은 떨어지는 대서양 연어라고 할지라도, 모닥불로 굽는 연어구이라니. 삼겹살도 모름지기 숯불이나 모닥불로 구워야 맛있다고 생각하는 제게 이 작은 식당은 놓칠 수 없던 곳이었습니다. 핀란드 사람들이 많이 먹는 연어수프도 궁금했고요. 그렇게 맛본 모닥불로 구운 대서양 연어는 제가 산타마을에 와야 할 또 다른 이유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죽하면 둘이서 연어 수프 하나와 연어 구이 하나를 먹다가 이건 하나 더 먹어야 한다며 연어 구이 하나를 추가로 주문했을까요. 추위에 떨며 30분을 기다려서 작은 오두막 식당에 들어갔는데 이건 1시간도 기다릴 수 있을 것만 같은 맛이었습니다.